디자인학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 특강 - 2강 그래픽 디자인은 어떻게 이루어지나(2)

그래픽디자이너 K아저씨 이야기 2024. 9. 20. 20:00

2강  그래픽 디자인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그래픽 디자인을 위한 시각 단어들

 

  지금까지 말해온 컨셉트 설정은 인간에 의해 연출되는 각종 사회 현상이나 소비자의 심리를 사회과학적인 도구를 이용하여 조사하고 분석하는 일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기계적이거나 논리적인 접근 방식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이 말을 뒤집어 풀이해 본다면, 이는 감성적인 접근방식으로 얻어진 추출물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비치고 있다.

 이야기 속의 찬수가 '가슴이 따뜻한 남자' 라는 디자인 컨셉트를 확정하고 이 메시지를 민영에게 보내려고 마음먹었다면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논리적 끝점에서 얻어진 컨셉트를 그래픽 언어로 번역하려고 하는 데서 발생한다. 컨셉트를 바로 그래픽 언어로 번역을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첫째는 신선하지 않다는 점이다. 원래 논리란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의 축적에서 얻어진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이미 검중된, 과학적이거나 사회적인 법칙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논리적  구조에서 얻어진 컨셉트 그 자체에서 새롭거나 신선한 느낌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굳이 이것을 그림언어, 즉 그래픽 디자인으로 번역하여 표현해도 신선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림 2-1과 같이 그래픽 디자인 작품 중에도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접근도 있다. 이러한 광고 방식을 '왜 - 광고(Reason -Why)' 라고 부른다. 여기에서는 왜 남양 석간수가 좋은 물인가를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러한 광고 작품조차도 그래픽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감성적인 측면인 즉각성이나 영속성에 상당 정도 기대고 있음을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림 2-1 석간수 광고. 주부생활 게재(2004년 8월)
그림 2-1 석간수 광고. 주부생활 게재(2004년 8월)

 



 두 번째로 일반 문자언어에 1:1로 대응하는 그림언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설명을 차근차근 해 보겠다. 지금 설정된 컨셉트는 '가슴이 따뜻한 남자 - 친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찬수, 가슴, 따뜻함이라는 3개의 키워드(핵심 단어)를 구할 수 있다. 이들 중에 '찬수' 는 실재하는 인물이고, '가슴' 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따뜻함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그  래픽언어는 없다. 또 '찬수'와 가슴' 의 경우에도 어떤 모습의 찬수, 혹은 어떤 가슴의 그림이 이러한 문자언어에 대응하는 것들인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 그림에서 어떤 찬수와 어떤 가슴을 대응언어로 선택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라. 아니면 여기에서는 적절한 대응언어를 발견할 수 없는가?  

 

그림 2-2, 그림2-3

 

 


 어떤 문자언어에 대응할 수 있는 그림언어가 있다 하더라도 이처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따뜻함처럼 대응할 그림언어가 없는 경우에는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기호학에서는  문자언어에 대응할 수 있는, 찬수와 가슴과 같은 그래픽언어를 도상(Icon)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그림 2-2는 찬수의 도상이며 그림 2-3는 가슴의 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따뜻함의 도상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들이 어느 경우에 따뜻함을 느끼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난로, 털 코트, 캠프파이어, 어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등 따뜻함을 느끼는 경우들을 살펴보면 불과 가까이 있을 때나 체온을 보호해 주는 어떤 것과 가까이 했을 경우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직접적인 도상이 없을 경우에는 그러한 느낌이나 지각을 주는 대상과 가까움(인접성)' 을 표현함으로써 그것에 대신할 수 있다. 또 이러한 경우도 있다. 피는 상처를, 눈물은 슬픔을 나타낸다. 물론 상처와 슬픔의 도상이 피와 눈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같이 둘의 관계가 원인과 결과를 이루는, 소위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도상이 없는 언어에 대응할 수 있는 그림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것을 기호학에서는 지표(Index)라고 부른다. 한편, 비둘기는 평화를, 또 월계수는 영예를, 목탁은 불교 이념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비둘기나 월계수, 목탁 등은 평화와 영예, 불교 이념의 도상이 아닐 뿐 아니라 지표의 인과 관계나 인접성 또한 여기에서 발견되지 아니한다. 말하자면 목탁이 있기 때문에 불교 이념이 그 결과로 나타나고, 비둘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기호의 유형을 상징(Symbol)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직접적인 대응단어, 도상이 없을 때도 지표나 상징 등을 이용하여 그림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래픽  디자인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상대(소비자)에게 보내려 할 때, 우리는 이야기의 내용을 도상, 상징, 지표 등을 이용하여 구성한다. 이 같은 그림언어의 구성을 전문 커뮤니케이션 용어로 '부호화( ) 과정' 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부호화 과정은 작가가 이를 보는 사람, 즉 수용자에게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꾸미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용어는 그래픽 작품의 '해석 과정'이다.  

 두 번째 설명이 좀 길어졌다. 이 설명은 논리적 끝점에서 얻어진 컨셉트를 바로 그림언어로 번역을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첫째로 신선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두 번째로는 직접적으로 대응할만한 그림언어를 구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금까지 설명하여 왔다.

 세 번째 문제는 그래픽 디자인은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감성적 설득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떤 원리를 수식으로 만들어내는 과학자가 아니라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그 재미는 달라진다. 권선징악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의 한결같은 결론은 이렇다.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마침내 귀하게 되고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흥부는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 라고 흥부전을 요약하면 누가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되며 자기도 흥부처럼 선한 생각과 행동을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게 되겠는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흥부의 가난함과 그가 겪어낸 고통을 부각시키기 위해 놀부가 등장하고, 놀부의 부인이 주걱으로 때린 뺨에서 흥부는 밥풀을 뜯어먹고...
 이 이야기 속에도 예외 없이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이 이야기의 설득과 흥미를 위해 시간과 공간 속에 안배되어 있다. 만일 주인공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극도로 압축시켜버린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결론과 만나게 될 것이다. 주인공의 슬품과 고통에 동참하고 기쁨과 행복에 공감하기 위해서 정서감이 서서히 긴장으로 조여졌다가 그것이 해소되는 '긴장과 이완 혹은 '정서  질서의 파괴' 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냉정한 논리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요약하자면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이 극도로 제한되면 우리는 정서감이 이입될 여지가 없는 귀납적 논리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를 위해 알맞은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우리의 감정을 이입 시킬 수 있게 된다.
  
 과학적 심리학의 원조( )로 불리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리보(Thödule-Armand Ribot)는 어린이나 미개사회인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 )의 특징으로 '감정논리' 를 들었다. 일반적인 논리가 지성에 바탕을 두고 보편타당성을 갖는데 반해, 자기에게 편리한 논리를 개발하여 상대를 설득하려 한다는 것이 그가 주창한 이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 논리가 반드시  어린이나 미개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심리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당신이 논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승리를 얻어낸다면 무한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벗을 잃게 되므로 그 승리는 곧 공허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이 말은 반드시 어린이나 미개인에만 해당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상태를 짐작하게 헤준다.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도 컨셉트에 해당하는 논리적 귀결을 단순하게 번역하는 일만으로는 그 속에 인간 감정을 섞어 넣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설득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데까지 설명을 해온 셈이다. 설령 컨셉트를 번역하여 그 논리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프랭클린의 말처럼 마음속으로 승복하는 소비자를 얻어내는데 실패한다면 그것이 무엇에 유용하겠는가?  

 지금까지 그래픽언어는 단순히 컨셉트의 번역물이어서는 안될 까닭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을 해왔다. 첫째는 신선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직역할 그림언어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그것은 귀납적 논리의 결과이지 감정이입이 없는, 말하자면 감동이 없는 비설득적 메시지가 되어버린다는 점들을 들었다. 그래픽 디자인에 신선함을 주고, 메시지 전달을 위한 시각언어를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상대를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 수 있는 이야기의 구사 능력은 거의 전적으로 디자인 컨셉트를 인간의 정서감으로 유도할 그래픽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배신한 부인에 대한 분노를 매일 밤 여자를 죽임으로써 달래고 있었던 샤리야르 왕은 어느 날 밤 세라자드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자기의 이야기가 왕의 홍미를 더 이상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 순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처럼 그의 흥미를 사로 잡을만한 이야기를 마련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천 하루 밤을 견더내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운명과 너무나 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이너들에 의해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주어지기도 하는 디자인 컨셉트, 그것은 오늘밤에도 예외 없이 나타날 샤리야르 왕의 기대 만족을 지각된 만족으로 바꿀 이야기의 제목일 것이다.
  '알라딘의 램프' 라는 제목만으로는 왕의 어떤 홍미도 사로잡지 못한다. 아마도 이야기꾼 세라자드는 주인공 알라딘을 모험과 도전과 기행의 주인공으로 만들면서 여러 차례의 위기에서 구해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는 그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는 해피엔딩을 선물하면서 샤리야르 왕으로 하여금 내일의 이야기를 기다리도록 꾸밀 것임에 틀림없다. 뒤를 어어 3강은 이 시대의 세라자드인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꾸며내기' 의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출처]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특강 - 인간심리와 그래픽디자인. 미진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