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 특강 - 3강 그래픽 디자인의 아이디어 (2)
아이디어 꺼내는 법
한국의 엄마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에게 영어공부나 피아노, 태권도를 시키는 등 조기교육에 정성을 쏟고 있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평균 5~7가지의 교양과목(?) 수강을 위해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선험된 원리와 지식' 을 조기에 학습시켜 자녀가 사회적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공통된 의지가 숨어 있음을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조기학습이란 인류가 개발해 놓은 논리의 실린더 속으로 한 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집어넣겠다는 계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습에 너무 일찍부터 길들여지면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왜?' 라는 질문이 사라져 버린다. 시간의 날줄 위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결과를 학습하는 것은 그것들을 중명하는 일과 그 안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어린아이들로부터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치원에 입학할 때 물음표로 시작하였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마침표로 졸업하게 된다는 말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유∙아동기와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자랐다. 이러한 학습이 제도권 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든 아니면 부모를 통해 이루어졌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지식과 논리를 일찍부터 익히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두가 그것을 잘 익히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창조적인 발상으로서의 아이디어는 앞에서 말해온 바처럼 녹색의 장원에 위치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또 그것들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그것들이 있는 녹색의 장원에 외출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논리의 실린더' 를 떠나기 어려운 일은, 마치 우리가 어린애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어린 시절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일 만큼이나 어렵다.
여기에서 앞 강에서 언급된 세라자드를 다시 만나보자. 그녀는 언제 처형당할지 모를 긴박한 상황이 매일 밤 계속되는 가운데에서도 왕의 흥미를 사로잡으면서 천 하루 밤을 견뎌냈다. 만일 그녀의 1,001 가지 이야기 중에 중복되는 것이 있었다든가, 비슷한 스토리와 소재의 유사성이 있었다든가, 왕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였더라면 아마 그녀는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을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그녀는 녹색의 장원에서 갓 수집한 소재로 새로운 요리법으로 만들어낸 음식, 즉 이야기의 성찬을 매일처럼 왕 앞에 차려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그녀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녀는 거의 틀림없이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가득한 맑은 눈을 가졌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녹색의 장원' 을 그렇게 자유롭게 산책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각종 사고법을 한 데 모아 농축하여 한 방울의 엑기스로 만들어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수평적 사고 강제하기' 이다. 우리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워낙 철저하게 논리적 사고의 틀에 갇힌 채 길러져 왔으므로 강제성을 띠지 않으면 한 순간도 수평적 사고의 상태에 머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상법이란 일종의 수평적 사고를 강제하기 위한 훈련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 개발된 방법의 차이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강제하는 방법 중에서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처방의 차이 정도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PMI, 체크리스트법, 속성 결합법, IF, 비유의 사냥 떠나기, KJ법, 전진사고법, 관점의 강제 설정, 역발상법 등 어느 것 하나 수평적 사고를 강제하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발상법은 없다. PMI는 Plus, Minus, Interest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용어이다. 이를테면 손가락이 6개리면, 눈이 하나라면, 이러한 식으로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요소의 수를 늘리거나(Plus) 아니면 줄여 보는(Minus) 강제법이다. 강제하지 않으면 누가 눈이 없거나 하나밖에 없는 인간을 생각해볼 수 있겠는가? 눈이 둘인 인간의 모습은 이미 논리의 실린더 안에 존재한다. 체크리스트법은 강제로 상상을 하기 위해 개발된 몇 가지 체크포인트에 따르는 사고법이다. 늘려보면? 줄인다면? 확대해 보면? 축소해 보면? 거꾸로 하면? 옆으로 하면? 다른 것으로 대체해 보면? 이렇게 하나의 대상을 놓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생각을 강제한다.
관점의 강제 설정법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는 관점이 제한적일 때 이를 강제로 늘리는 사고법이다. 이를 테면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갈 때 우리는 흔히 걸어간다. 말하자면 정류장까지 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한 가지라는 말이다. 다소는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방법이 될지 모르지만, 미리 강제로 설정된 관점의 수만큼 방법을 여러 가지로 구상해보는 사고법이다. 썰매를 타고 가는 방법,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 소형 트럭을 붙잡고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가는 방법 등...
이러한 사고법 전체를 소개하는 일은 적지 않은 분량의 책에 해당되는 일이므로 하나하나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생각을 비논리적인 세계로 이끌어감으로써 지금까지 검증되지 않은 거친소재들을 만나도록 우리를 강제한다.
[출처]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특강 - 인간심리와 그래픽디자인. 미진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