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학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 특강 - 3강 그래픽 디자인의 아이디어 (3)

그래픽디자이너 K아저씨 이야기 2024. 9. 28. 00:30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 특강 - 3강  그래픽 디자인의 아이디어 (3)

 

아이디어 발상의 패러독스  

 
지금까지 우리는 아이디어가 어디에 있는지, 또 그것들을 꺼내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왔다. 한 마디로 정리해보자면, 아이디어는 논리의 실린더 안에는 없고 그것들의 밖에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는 방법은 녹색 사고를 어떤 효과적인 방법을 가지고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지만 녹색 사고, 즉 수평적 사고에서 얻어진 생각의 재료가 그 자체로서 아이디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린더 밖에서 얻어진 소재들은 새롭기는 하지만, 전혀 가공되어 있지 않은 거친 재료들일 뿐이다. 결국은 이들을 가공하여 실생활에 쓸모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이들을 실린더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실린더 내부에서 생활하도록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것이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그럴듯 하지 않은 것까지도 받아들일만한 아량을 인간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실린더 밖에서 발상을 해야 하지만 그 결과는 실린더 안으로 다시 가지고 들어가 논리적 검증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발상의 패러독스이다.  

한 사또가 일단 눈독을 들인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홈치고야 만다는 솜씨 좋은 대도(大盜)를 잡았다. 그런데 잡고 보니 생각보다 어린 소년이었다. 사또는 그의 기막힌 솜씨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포졸로 철저한 감시를 한다면 그도 어쩔 수 없으리라는 계산도 작용하였다. 그런 이후에 처형해도 급할 것은 없었던 것이다.  

"네 이놈! 내 오늘은 너를 시험하리라. 내가 안방 한 가운데에 요강을 하나 두겠다. 그리고 방과 관아의 뜰에 수십 명의 포졸들로 경계를 세워 요강을 중심으로 세 겹의 원을 그리도록 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훔칠 수 있겠느냐?" 
"'만일 훔치면 저를 석방해 주시겠습니까?"  
"좋다, 약속하마 그 대신 72시간을 넘겨서는 안 되느니라." 
3일 후, 소년은 시또가 기다리고 있는 관아의 뜰 안으로 무언가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들어 왔다.
"그래 훔쳤느냐?" 
"좀 힘들었습니다만 성공했습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보자기 속에는 사또의 요강이 들어 있었다. 사또는 화들짝 놀라 안방에 포졸을 보내어 확인하라고 소리쳤다. 사색이 되어 돌아온 포졸은 요강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고 보고했고, 그 순간까지도 포졸들은 요강을 에워싸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이 이야기의 플롯(Plot)은 간단하다. 말하자면 무엇이든 훔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소년과 3중 경계를 하고 있다는 두 가지 논리의 충돌, 즉 모순률의 설정이다. 구조가 동일하면서도 여전히 드 보노의 에피소드에 못지않게 흥미를 사로잡고 있다. 그 이유는 동일한 구조라고 하더라도 요리법이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소년은 3일째 되는 날 밤에 천장으로부터 긴 자루를 요강 속으로 내리고 거기에 젖은 모래를 부어 내렸다. 포졸들은 요강을 등지고  외곽 경계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일단 모래가 채워진 상태에서 그것을 끌어올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것은 쓰러지면서 검은 색 조약돌을 마당에 홀리는 해결책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수평적 사고를 하였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그 해결책이 매우 논리적이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소재는 녹색의 장원에서 찾았지만, 그것을 논리의 실린더 안으로 성공적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의 구조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강이 아이디어 발상법에 관한 강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따로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학습이라기보다는 인간 사고에 대한 훈련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법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새로운 발상이 자신에게도 가능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하는 수가 많다. 그러한 책은 발상에 관하여 귀납적 지식들을 엮어 놓은 것들이어서 대체적으로는 과거의 성공사례들을 이론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지나간 일을 논리의 줄기와 가지에 엮어 편집해내는 일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다른 문제에 부딪치고 있으며, 그것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지금 해결해야 하는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생각의 도구(Tool)만을 빌릴 뿐, 그럴 듯한 결과까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발상에 관한 일은 학습이 아니고 훈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자신의 생각 속에 생각을 위한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새로운 생각을 발굴해낼 수 없다. 또 그 훈련은 우리가 왜 그러한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아는 상태에 이루어져야 효과적임은 물론이다. 본 강을 통하여 인간 사고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수평적 사고(녹색 사고)

 
 
 


[출처]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특강 - 인간심리와 그래픽디자인. 미진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