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 특강 - 4강 그래픽 디자인의 창조성과 미메시스(1)
작은 생각의 주머니
김과장은 회사의 구조조정에 밀려 어느 날 갑자기 사오정(45세의 정년 퇴직자) 신세가 되었다. 한때의 능력을 인정받아 퇴직금은 적지 않게 받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은 퇴직 당시의 패기도 점점 사라지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인생을 사는데 돈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김과장을 보다 못한 부인이 그가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을 통한 세계일주를 권하였다.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견문도 넓히고... 사람들과도 많이 사귀고 돌아오세요. 전화도 하지 말고 편지도 쓸 필요 없어요. 1년 동안 오직 당신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남달리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김과장은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여 1년 계획의 세계일주 자전거 여행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김과장의 자전거 여행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북경에서는 정월의 거리 축제에 나갔다가 불량 불꽃놀이 폭죽에 맞아 얼굴 일부와 목덜미에 심한 상처를 입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크고 작은 화상흔이 여기저기 남게 되있고, 이스라엘의 욥바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살 특공대의 기습을 받아 거의 죽을 뻔하였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두피에 심한 상처를 입어 치료를 받았는데 머리에 감고 있던 붕대를 풀고 거울을 본 김과장은 깜짝 놀랐다. 화상으로 두피의 절반 가량이 대머리가 되었던 것이다. 원래 미국 북서부 시애틀 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었던 김과장은 병원 입원기간 때문에 미국 여행을 생략하고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서 귀국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그런데 그가 여행을 마감하고 공항에 내렸을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부인과 아 이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이미지의 남편과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위해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았다. 그가 오랜만에 잡아본 아내의 손은 따뜻했지만 슬그머니 손을 빼는 아내의 손길을 통해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 자전거 여행자로 남아 있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달라진 외모를 가진 그를 1년 전의 그로 다시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우리는 주인공 김과장의 딱한 사정과 만나고 있다. 그는 서울을 떠나 다시 서울로 되돌아올 때까지 줄곧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여행지를 누비고 다녔다. 매일 일어나면 자전거를 닦고 체인을 조이고 기름 치고 페달을 밟고... 그렇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은 옛날의 남편과 아버지로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물론 북경과 욥바에서 사고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김 과장 자신의 의지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는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창조성'과 '미메시스' 의 문제도 김과장의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 속에서 파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다. 알타미라 동굴의 암벽화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대상을 그리거나 만들고 있는 사람들, 소위 예술가들은 오랜 옛날 부터 마치 김과장의 자전거 여행치럼 그들의 행위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러한 행위자에 대한 일반인의 수용이 조금씩 변해왔을 가능성을 우리는 김과장의 일화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의 암벽에 들소를 그렸던 사 람을 당시에 화가나 예술가라고 칭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또 그가 창조성을 지녔다든가 아니면 모방에 충실하였디든가 하는 개념 그 자체를 가졌을 가능성은?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다소는 터무니없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렇지만 언제 어떠한 생각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들이 오늘 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으로 변천되었는가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 알고 있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단순한 개념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단편적 지식 때문에 혼란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기 십상이다. 이번 강에서는 이러 한 문제에 적절한 답을 주기 위해 자그마한 '생각의 주머니'를 마련하였다.
어떤 조수가 동굴에 갇혀 있다. 그는 동굴 입구는 바라볼 수 없고 오직 벽만을 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쇠사슬로 뮤여 있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굴의 벽에 어른거리는 자신의 그림자와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물들의 그림자뿐이 다. 그는 실재를 볼 수 없으므로 그것들이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를 실재라고 간주하는, 제한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버트랜 트러셀 | 정석해. 한철하 역 | 서양철학사(상) | 한국번역도서(주)1958년 p180)
이 우화는 플라톤(Platon) 칠학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이데아론' 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이다. 우리가 대상을 관찰할 때, '저것은 고양이다' 혹은 '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개별적인 대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각각의 '고양이' 들은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를 뿐만 아니라, 발견되는 장소도, 시간도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우리는 그것들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면서 한결같이 '고양이' 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그러한 판단을 가능하게하는 인식의 척도는 어떤 것인가? 만일 그러한 자(尺)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플라톤은 만일 '고양이' 라는 낱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이 고양이, 저 고양이라고 하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고양이가 아닌 어떤 보편적인 대상을 의미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고양이 일반(一般, Universal Cattiness)' 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고양 이 일반' 에 닮아 있으면 그것은 고양이로 지각될 것이며, 또 그것이 '컵 일반' 에 닮아 있으면 그것은 고양이로 보이지 않고 컵으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 - 보편' 을 그는 '이데아(Idea)' 라고 불렀다.
이데아로서의 고양이나 컵은 어떤 구체적인 고양이가 태어난다든가, 어떤 컵이 제작되면서 그 시점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 들이 죽거나 깨어진다고 해서 소멸되지도 않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현상처럼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으 며, 시간이나 공간적인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 그것은 동굴 밖 밝은 곳에 존재하며 우리 인간은 동굴에 갇혀 있는 죄인처럼 그것들의 그림자(이데아의 그림자)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키워드> 이데아 현상계
플라톤(Platon) 플라톤(BC 428~347년경)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 텔레스 등과 더불어 그리스의 3대 철인으로 불린다. 그는 인류의 영원한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유토피아를 최초로 구상하였던 위대한 철인이었다. 그는 우리들의 존재세계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하나는 감각적 인식과 신체적 생존의 현상계이며, 또 하나는 정신, 즉 사유를 통한 이념의 세계가 그것이다. 현실적 사물의 세계를 현실 되게 하며 그 현실로 하여금 마침내 귀의(歸依)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이데아의 세계라고 보았다.
(김형석 I 서양천학사 100장면| 가람기희 | 1994. 박성숙편| 철학 이 야기|석일사|1999. Bertrand Russl1저| 정석해. 한철하 공역| 서양천학사(상) I 한국번역도서 주식회사 | 1958 참조)
플라톤 학설의 형이상학적 부분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그것들의 개별성과는 다른 '이데아' 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이데아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고양이는 '고양이의 이데아' 에 담아 있으면 고양이로 분류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고양이들은 그것들이 이데아의 그림자인 만큼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로 남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이데아를 닮거나 관계를 느끼게 하는 어떤 것을 만들거나 그릴 수는 있지만, 이데아 그 자체를 만들 수는 없는 한계적 존재이다. 결국 그의 철학은 모방의 세계만이 인간에게 허락되어 있을 뿐, 창조를 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었던 종교철학자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한편,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이데아의 실재성에 관해 처음부터 그 타당성을 인정 하지 않았다. 그가 17세에 플라톤의 문하에 들어가 20년 동안 스승인 플라톤으로부터 수학을 하였기 때문에 그는 스승의 주요 사상인 이데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의 철학적 입장은 플라톤의 그것과는 달리 경험 과학적이었다. 플라톤이 말한 존재의 원형으로서의 이데아란 인간의 생각 속에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철학이나 과학적 실재는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현상계에는 질료(Materials)를 통해 이루어진 형상(Form) 들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여 러 질료들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낼 힘이 없는 존재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질료로 하여금 형상이 되게 하려면 어떤 힘이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그는 이것에 동인(動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하자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질료를 이겨서 형상을 만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박의 씨앗은 수박이 되려고 하고, 버찌는 벚나무가 되려는 목적이 씨앗에 숨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모든 사물을 이루는 동인력(動因力) 가운데 최초의 동인력, 다른 것으로부터 원인을 받지 않으면서 스스로가 동인이 되어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인 자인자(自因者), 즉 스스로 원인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를테면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동인으로서 우리는 '부모' 를 생각할 수 있다.
그 부모는 그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동인으로서의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또 그 부모는... 이러한 순차적 동인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신적 존재에 의해서 종지부가 찍히게 된다. 이를 철학적 용어로 '우주론적 논변' 이라고 부른다.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의 원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원인의 인과계열을 추적해나가다 보면 모든 민물의 생성원인이 되는 제일 원인으로서 신이 존재한다는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각 다른방향에서 신적 존재를 설정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플라톤이 '이데아' 를 놓았던 자리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인자'를 놓은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시기인 13세기까지 서양의 기독교 교리를 지탱하는 주된 사상이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학이나 철학이 적어도 그때까지는 플라톤파에 속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오근재의 그래픽디자인특강 - 인간심리와 그래픽디자인. 미진사 2005